언론보도
<조선일보>노랑부리저어새·흑두루미… 멸종위기 철새의 안식처
한국반려동물산업경제협회
2023-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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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 전남 순천은 철새들의 낙원을 방불케 한다. 두루미와 기러기, 오리, 고니 등 80여 종에 이르는 철새 수만 마리가 갯벌에서 쉬고 겨울 들녘에서 먹이를 잡는다. 지난 6일 전남 순천만 습지 일대의 갯벌에서 천연기념물인 노랑부리저어새와 청둥오리 여러 마리가 물가를 거닐고 있다. /김영근 기자
‘뚜루뚜루 뚜루루루, 끼룩끼룩 끼룩끼룩.’
지난 6일 오후 찾아간 전남 순천시 대대동 순천만 습지 생태공원. 공원 내 철새 탐조(探鳥)대에 오르자 호젓한 겨울 들녘 위로 날갯짓하는 수천 마리의 새 울음소리가 쉴 새 없이 넓게 퍼졌다. 새를 관찰하기 좋도록 전망대처럼 만들어 둔 2층 탐조대에서는 순천의 대표 철새로 꼽히는 흑두루미와 큰기러기, 쇠기러기는 물론, 큰고니(백조)와 독수리, 노랑부리저어새, 개리, 혹부리오리 등 일일이 세기도 어려울 정도로 많은 종류의 새가 보였다. 겨울로 접어들며 누렇게 변한 갯벌 주변 논에서 새들은 바닥에 흩뿌려진 볍씨를 먹거나 볏짚 밑에 웅크린 거미와 각종 애벌레, 우렁이 등을 부리로 부지런히 헤집었다.
순천만 습지를 품은 순천은 겨울 철새를 한껏 바라볼 수 있는 최고의 고장으로 꼽힌다. 두루미나 기러기, 오리, 고니 등 80여 종 평균 4만여 마리가 매년 3~4개월 동안 순천만에서 겨울을 난다.
추위를 피해 날아온 철새들 입장에서 순천만 일대는 낙원 같은 곳이다. 허위행 국립생물자원관 연구관은 “사람의 발자취가 뜸해진 농경지에서 편안하게 먹이를 찾고 갯벌에서 천적을 피해 쉴 수 있다는 장점 덕에 해마다 찾아오는 철새가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순천만 갯벌은 지난 7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목록에 오르기도 했다.
이 생태공원 안에는 탐조대 3곳에 닿을 수 있는 1.4㎞ 구간 철새 관찰로가 있다. 순천시는 지난겨울 철새 보호 등을 이유로 막아놨던 이 길을 약 10년 만에 일반에 개방했다. 순천시 관계자는 “겨울에만 개방하는 길인데 작년에는 코로나 탓에 방문객이 별로 없어 사실상 올해가 본격적인 재개방인 셈”이라고 했다.
이곳에서 만날 수 있는 여러 철새 가운데 백미는 ‘겨울 진객(珍客)’이라 불리는 흑두루미다. 겨울철 순천만을 찾는 귀한 손님이란 의미를 담았다. 몸은 검고 부리와 얼굴 쪽은 흰 흑두루미는 국제적으로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된 천연기념물이기도 하다. 해마다 러시아나 중국 북부에서 봄과 여름을 난 후 12월쯤 겨울이 되면 동아시아 쪽으로 내려온다. 순천만은 국내 유일의 흑두루미 집단 월동 서식지다.

순천만 주변 농경지에서 수백 마리의 흑두루미들이 한데 몰려 날아다니며 먹이를 찾고 있다(위).전망대 형태의 철새 탐조대에서 방문객들이 주변을 누비는 새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고 있다. /김영근·조홍복 기자
순천만에서 겨울을 나는 흑두루미는 2000년 115마리에서 올해 3360여 마리로 21년 만에 29배로 늘었다. 이날 탐조대에서 만난 백기현(54)씨는 “대전에서 순천만 경치를 보러 왔는데 흑두루미의 우아한 모습에 푹 빠졌다”고 했다. 철새 전문가인 강나루(62) 순천만 명예습지안내인은 “올해는 순천만에 찾아온 흑두루미 숫자가 작년 겨울보다 40% 가까이 늘어나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며 “‘순천만이 안전하다’는 학습 효과가 생기면서 이 일대에서 새들이 웬만한 인기척에 놀라지 않아 새의 움직임을 더 생생하게 볼 수 있다”고 했다.
가창오리는 최근 이 일대에서 갑작스럽게 늘어난 철새다. 멸종 위기에 있는 국제보호종으로 작년에 이어 올해도 무려 20만마리가 순천으로 날아들었다. 2017년만 해도 숫자가 3000여 마리에 불과했는데 최근 몇 년 새 급격하게 숫자가 늘었다. 황선미 순천만보전팀 주무관은 “순천만처럼 새들이 쉴 수 있는 갯벌과 농경지가 나란히 있는 지역이 많지 않다 보니 먹을거리가 많은 곳으로 새들이 점점 더 몰리는 것 같다”고 했다.
이날 탐조대에서 가창오리 수만 마리가 갯벌에 넓게 퍼져 있는 모습을 보니 개미 떼가 연상될 정도였다. 오리들이 한 번에 날아오를 때는 ‘두두두두’ 하며 장대비가 내리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순천만이 ‘철새 낙원’이 된 것은 사람의 노력이 더해진 결과다. 순천시는 2009년부터 순천만 습지 인근에서 축구장 면적의 82배에 달하는 59만㎡ 규모 들판을 무농약으로 벼를 재배하는 ‘흑두루미 희망농업단지’로 운영하고 있다. 이 논에서 수확하는 연간 300t 규모의 볍씨를 모두 철새 먹이로 활용한다. 수확 후 발생한 볏짚은 100% 논바닥에 깐다. 볏짚 아래에 습기를 유지해 주면 친환경 농법에 활용한 우렁이가 마르지 않고 살 수 있고, 각종 곤충과 애벌레가 꼬이게 된다. 모두 철새의 먹이다.
원래 이 일대에 있던 전봇대 282개도 뽑아 새들이 안전하게 날아다닐 수 있게 했다. 농경지 주변에 3m 높이 갈대 울타리를 설치해 사람의 출입을 막고, 야간에 차량 불빛이 비치지 않게 했다. 새가 놀라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허석 순천시장은 “순천만 습지는 느림과 멈춤, 여유, 치유에 어울리는 관광지”라고 말했다.
(출처:https://www.chosun.com/national/regional/honam/2021/12/13/WZPVJR5W75C63DMEY7TFLHKYUY/)